[김철중의 생로병사] 의료 정보 洪水 속에 꿈틀대는 의학 詐欺(사기)

[김철중의 생로병사] 의료 정보 洪水 속에 꿈틀대는 의학 詐欺(사기)

M 이기원(이종두) 0 2338 6 0

[김철중의 생로병사] 의료 정보 洪水 속에 꿈틀대는 의학 詐欺(사기)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입력 : 2015.02.10 03:00

주스·올리브油·소금 혼합액 肝 청소 특효약처럼 퍼지고
美 重범죄 전과 9범 개발한 波動 치료기는 국내서 사용
反의학·자연치료 주장 저자, TV에도 출연하며 환자 오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철 지난 전염병처럼 잊을 만하면 떠도는 건강법이 있다. 이른바 '간(肝) 청소법'이다. 몇 년 전 유행하더니 요즘 페이스북이나 카톡을 통해 다시 돌아다닌다. 오렌지 주스와 올리브유를 섞고 소금 20g을 넣어 만든 액체를 잠자기 전에 먹으면 용변 시 노폐물이 진흙처럼 나온단다. 그렇게 빠져나온 담석이라면서 1~2㎝ 크기의 굵직한 녹색 알갱이 사진까지 제시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의학 사기다. 간이나 담낭에 있는 담석이 담관을 통해 소장으로 빠져나오려면 크기가 2㎜ 이하 정도여야 한다. 담관 끝에는 조임쇠가 있어서 그렇게 큰 담석이 나올 수 없다. 그 크기의 담석이 담관을 통과하려면 담관이 찢겨서 폴짝 뛸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일으킨다. 녹색 알갱이는 담석이 아니다. 올리브기름이 고형 물질로 변한 것이라고 예전에 실험으로 입증됐다. 하루 소금 섭취 권장량이 5g 이하인데 소금 20g을 한 번에 마시면 혈압이 급속히 올라서 위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간 청소법'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대한간협회가 후원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말만 들으면 마치 근사한 의학연구 단체 같지만 대한간협회는 간 청소 관련 제품을 판매·홍보하는 민간단체나 다름없다. 이들은 간 청소법을 캐나다의 훌다 레게 클라크 박사가 고안했으며 미국·유럽에서도 쓰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클라크 박사는 의사가 아니고 동물학이 전공이다. 기생충을 제거하면 암과 에이즈 등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자연치료사이다. 치료법이 황당하기 그지없어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사기성을 띤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가 운영하던 대체의학 클리닉들은 거액의 벌금을 물고 문을 닫아야 했다.

이 허무맹랑한 간 청소법은 의학 사기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우선 병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비법이라고 말한다. 이게 퍼지면 의사들이 굶어 죽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실체를 알기 어려운 해외 의사를 들먹인다. 때론 존스홉킨스대 같은 그럴듯한 외국 유명 대학이나 옛 소련 정보기관의 연구로 포장한다. 정통 의학계로부터 탄압받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천연 재료를 쓰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암(癌)을 포함한 만병통치 효과는 약방의 감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요즘 파동(wave)을 이용해 16가지 질병 영역의 진단이 가능하고 이를 치료할 수도 있다는 의료기기가 전국 300여 의원에서 쓰이고 있다. '스키오(SCIO)'란 이름의 기기(器機)다. 헝가리에서 수입됐다. 우리 식약처는 이를 심신 진정과 재활치료용 '바이오피드백 장치'로 허가했다. 그런데 급성 질환, 척추 질환, 뇌 기능 이상, 알레르기 등을 다 잡아낼 수 있다고 선전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 넬슨 박사가 개발했다고 말한다. 에너지 의학, 양자의학이라는 문패를 달고 자폐증과 암 치료도 가능하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이 기기는 수년 전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압류 조치를 받았다. 사기성이 농후하여 사용해선 안 된다는 조치다. 미국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개발자 넬슨은 NASA에 근무한 적이 없다. 미국 내에서 9번의 중대 범죄를 저질러 헝가리로 도주한 인물이다. 이 장비를 맹신하다 치료가 방치되어 사망한 환자 사례도 있었다. 미국 신문은 이 기기에 '뱀 기름(snake oil)'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어로 '사이비 약물'을 뜻한다. 뱀 기름으로 절망에 빠진 환자들을 상대로 수백만 달러의 이득을 취했다고 비판받은 기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쓰인다.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라는 책을 쓴 허현회씨는 자연치료 전문가로 불리며 빈번히 TV에도 출연했다. 그는 거대 자본의 음모로 독약과 같은 약물이 환자에게 대거 투여되고 있다며 현대의학적 치료에 반대한다. '약을 끊은 사람들'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운영한다. 최근 이 카페를 이용한 유방암 환자가 자연치료법을 고수하다가 죽음을 맞았다며 유족 측이 허씨에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방암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전화와 문자로 허씨의 지시를 받아서 시키는 대로 하다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환자 집까지 찾아가 "잘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미국에 허씨의 원조격인 케빈 트루도라는 인물이 있었다. 암 치료에 항암제를 쓰면 더 위험하다느니, 에이즈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제약회사의 음모라느니 하는 주장을 폈다. 그가 쓴 책은 반(反)의학 분위기를 타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백만장자가 됐다. 그러다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근거를 조작하고 과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그에게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대가로 400억원의 벌금을 매기고 책 출판을 금지했다.

인터넷에는 근거 없는 의료 정보가 무수히 떠다니고, 각종 TV에는 과장된 건강 정보가 넘친다. '의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건강법'이 나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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